길다고 생각했던 한국에서의 시간도 이제 끝이다.
나는 오늘 비행기를 타고 영국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항상 그래왔듯이 오글거리는 글을 써나가려고 한다 ㅋㅋㅋㅋ
특별한 목적 없이 왔는데 많은 것을 얻고 가는 기분이다.
그 중 제일 중요한 건 몇달 전의 나와 비교 했을 때 덜 불행하다는 점이다.
지금은 예전보다 내 자신을 덜 싫어하게 된 것 같다 (웃음).
주변에서도 표정이 훨씬 밝아졌다고 한다.
오자마자 외할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루게 되었는데 내가 성인으로서 맞이하는 첫 죽음이었다.
자아정체성 혼란을 겪고 있던 나는 할아버지를 통해서 내 뿌리를 찾을 수 있었다 (할아버지 안녕하세요 글 참고).
그것은 염세주의적 사고를 내재하고 있던 나에게 삶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다.
그리고 그 전에 한국에 방문했을 때는 친척들 집이나 호텔에 묵었는데 이번에는 우리 집, 내가 초등학교와 중학교를 다닌 구리에서 지내게 되었다.
그래서 내 어린 시절도 돌아보고 과거의 내 자신을 치유하는 시간이 되기도 했던 것 같다.
많은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외국 생활에 대한 로망과 그 현실은 엄청나게 다르다.
나는 여러 나라에서 외국 생활을 해본 경험이 있는데 매번 적응하는데 있어서 너무나도 심한 고생을 했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내 자신에게 많은 시간을 쏟아부어야 했다.
청소년기때 괜히 괴리감, 소외감, 이질감 등을 혼자 느끼면서 아주 삐딱한 사고를 가지게 되었다.
생활에는 질서가 없었고 믿거나 말거나 말과 행동 모두 매우 폭력적이었다.
대학생이 되어 자리를 잡으면서 나아지는 듯 싶더니...
거의 모든 젊은이들이 느끼는 '이 세상에는 내가 설 곳이 없다' 라는걸 몸소 깨닫게 되자 나는 또 힘들어했다.
한국에도 영국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되니 그것을 더욱 예민하게 받아들였던 것 같다.
몸에서도 반응을 하는데 숨막힌다는 표현이 정확하다.
거의 매일 누군가가 목을 조이는 듯한 불안감이 수시로 찾아왔다.
그러면서 사람을 만나는 것도 두려워졌다.
인간은 너무나도 나약하다.
나는 서서히 모든 것이 쓸데 없다고 생각되었고 마치 인생을 포기해서 곧 죽을 사람처럼 행동했다.
내 물건을 정리하고, 버리고, 팔고 그랬다.
그토록 열정적이던 내가 불과 몇달 전에는 아무런 의욕이 없었다 (식욕 빼고 ㅋㅋ 식욕까지 잃었다면 나는 분명 거식증 환자가 되서 죽었을거다).
학업도 그만 두고, 모두와 연락을 끊고, 그야말로 세상과 단절된 채로 살았었다.
그래서 사실 영국으로 돌아가는게 엄청 두렵다.
모든 책임감을 거기에 두고서 한국에 온거니깐 또 힘들어하고 과거의 생활패턴이 반복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엄마가 말해주시길, 신은 우리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시련만 주신다고 한다.
그래서 더더욱 포기하고 싶지 않다.
나의 고민은 이겨낼 수 있는 그런 것이 아니라 평생 짊어가야 할 짐이라고 생각하려고 한다.
그리고 현재로서 내가 속한 곳은 한국이 아니라고 보지만 언젠간 돌아올 수 있는 곳이라는걸 이제는 알기에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내 자신을 조금 더 믿고, 내가 할 수 있는 것들부터 시작해서 하나씩 차근차근히 도전할 계획이다.
한국에서 보낸 155일 그 하루하루가 너무 감사하고 소중했다.
2015년 11월 19일, 한국에서
🎵 비투비 - <집으로 가는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