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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icole Kidm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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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까지만 해도, 나는 매일같이 일정표 속에 갇혀 살았다.
시간이라는 게 늘 '해야 하는 일' 의 단위로만 느껴졌는데, 퇴사 후 처음 맞은 며칠은 낯설 만큼 조용하고 빠르게 흘러간다.
자유로운 시간은 느긋하지만 동시에 금세 사라진다.
무언가를 향해 달려가던 습관을 멈추고, 이제는 스스로의 마음이 정하는 속도로 살아보려 한다.
그건 불안하면서도, 묘하게 아름다운 일이다.
퇴사를 결심한 건 충동이 아니었다.
그 마음은 조용히, 그러나 오랫동안 숙성된 결정이였다.
통보의 순간, 많은 말을 할 필요는 없었다.
그동안 감사했고, 배웠고, 이제는 제 길을 가겠다는 뜻만 담아 담담하게, 그러나 확실히 전했다.
말을 아꼈지만, 그 안에는 단단한 결심이 있었다.
이제는 내 시간을, 내 방식으로 쓰겠다는 다짐.
나를 더 이상 소모하지 않겠다는 확실한 의지가 들어 있었다.
그 말을 전하고 나니, 마음이 이상하리만큼 고요해졌다.
'미련' 이라 부를 수도, '안도' 라 부를 수도 없는 감정.
그저 오래 눌러둔 마음이 제자리를 찾아가는 느낌이었다.
후련함이라기보다는, 마침내 한 챕터가 끝났다는 평온함.
감사와 아쉬움, 그리고 아주 작지만 확실한 해방감이 섞여 있었다.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면, 나는 그동안 크고 작은 변화와 새로운 도전 속을 쉼 없이 지나왔다.
누군가의 부탁 앞에서는 망설임보다 책임이 먼저 앞섰다.
그건 나의 강점이었고, 동시에 나를 조금씩 지워가는 습관이기도 했다.
매번 다른 부서, 다른 역할 속에서 나는 '적응하는 법' 을 배웠지만, 정작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가는 법' 은 잊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는 '더 배우기보다, 내가 무엇을 쌓고 있는가' 를 묻게 되었고, 그 질문은 마음속에서 천천히 자라났다.
더 이상 노력의 결과가 '채워지는 감각' 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어느 날 문득, 내 안이 가벼워지지 않고 오히려 조금씩 무거워지고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그런 나를 가장 먼저 알아본 건 다름 아닌 나 자신이었다.
그 무게를 외면하지 않기로 했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내 자존감을 지키는 가장 단단한 선택이었다.
한계와 성취, 회의와 책임감을 동시에 배웠고, 그 과정에서 모든 경험은 여전히 나의 일부로 남아 있다.
그렇다고 해서, 그동안 모든 일에 온전히 몰입하며 열정을 다 쏟은 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최소한의 마음으로 버티며 지냈다.
사람들에게도, 일에도, 너무 가까워지지 않으려 했다.
지치지 않기 위해, 나를 잃지 않기 위해.
그런데 마지막 순간에 받았던 따뜻한 말들이 마음을 조용히 울렸다.
롤링페이퍼에는 대부분 '항상 웃으며 대해줘서 고마웠다', '밝고 긍정적인 에너지를 줬다' 는 말들이 적혀 있었다.
그건 억지로 꾸민 모습이 아니더라도, 어쩌면 최소한의 성의만으로 누군가에게는 좋은 인상으로 남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무심한 태도와 무표정 속에서도 진심은 전해졌던 것 같다.
마지막까지 별도로 작은 정성까지 더해 챙겨준 사람들도 있었다.
그 마음 덕분에 엄마가 "그래도 사회생활 잘했네" 라며 웃으셨다.
좋았던 일, 아쉬웠던 일 모두 마음속에 남는다.
돌이켜보면, 논란도, 오해도, 말도, 탈도 많았던 시간들이었다.
이제는 그것들을 모두 뒤로 하고 나아가려 한다.
이번에는 타인의 기대와 기준이 아닌, 내 내면의 리듬으로 살아가려 한다.
한 장의 챕터를 닫고, 또 다른 이야기를 써 내려가기 위해.
나는 '멈춤' 을 택했다.
이 선택은 도망이 아니라, 방향의 회복이다.
지금의 나는 잠시 멈추어 서 있지만, 결코 무력함은 아니다.
이건 나를 지키는 가장 단단한 형태의 움직임이다.
조용하지만 확실한 회복의 시작.
그리고 나는 그 고요함 속에서, 비로소 나 자신을 다시 존중하기 시작했다.
결국 내가 택한 건, 나를 대하는 방식을 새로 정립하는 일이었다.
잠시 쉬어가며 다음 길을 준비하려 한다.
조금 느려도, 때로는 답답해게 느껴져도 괜찮다.
이 속도가, 지금의 나에게는 꼭 맞다.
나는 그동안 조직의 리듬에 맞춰 살아왔지만, 이제는 나의 호흡으로 하루를 맞이하려 한다.
조직의 질서 속에서 나를 잃어버렸다면, 이제는 나의 질서를 다시 세워야 한다.
그건 어쩌면, 오래 미뤄둔 나 자신으로의 복귀일지도 모른다.
해야 할 일도, 가야 할 곳도 없는 하루는 오히려 가볍게, 흘러가듯 사라져 느슨함과 아쉬움이 동시에 남는다.
처음 며칠간은 밀린 덕질을 하며 보냈다.
조용히, 마음껏 좋아하는 걸 보고 또 보고 - 이유도, 목적도 없이 그저 좋아서.
익숙한 장면 속에서 다른 의미를 찾아내며, '나, 이때 이런 마음이었구나' 하고 나 자신과 대화를 나누는 듯했다.
직장 생활 내내, 그 좋아하는 것들이 내게 힘이 되어 나를 지탱해주었다.
하루를 버티게 한 작은 불빛이자, 때로는 방향을 잃지 않게 해준 나침반이었다.
다만,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눌러두었을 뿐이다.
그리움, 설렘, 그리고 어쩐지 나를 나답게 만들어주는 온기.
그 외에는 잠깐 산책을 나갔다가, 슈퍼에 다녀오곤 한다.
햇살은 여전히 부드럽고, 공기는 생각보다 선선했다.
별일 없는 하루인데도, 이상하게 가슴 한켠이 따뜻했다.
이렇게 사소한 하루를 보내다 보면 문득, 내 안이 조금씩 가벼워지고, 한 켠이 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퇴사 이후의 나날은 여전히 고요하다.
하지만 그 고요함은 공허함이 아니라, 무언가 새로 자라나는 소리 없는 움직임 같다.
의무로 가득했던 시간이 사라지고 나니, 그 자리에 '진짜 내가 무엇을 원하는가' 라는 물음이 남았다.
아무것에도 묶이지 않은 지금, 나에게 "그래서 이제 뭘 하고 싶어?" 라고 묻는다면, 결국 답은 하나였다.
"작품을 만들고 싶어요."
대단한 예술가가 되고 싶다는 뜻이 아니다.
단지, 내 안의 세계를 다시 꺼내고 싶다는 의미다.
그림이든 글이든, 형태가 무엇이든 간에 - 나는 지금, 표현을 통해 다시 나 자신으로 돌아가고 있다.
그러다 문득, 4일째 되던 날 한참 묵혀 두었던 미술 도구들을 꺼냈다.
3단 툴박스 안에는 지난 날의 흔적들이 차곡차곡 쌓여 있었다.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대충 알고 있었지만, 막상 열어보니 잊고 있던 재료들이 조용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순간 묘하게 숨이 고여왔다.
아니다, 잊혀진 것이 아니라, 단지 기다리고 있었던 것들이었다.
마치 잠들어 있던 내 안의 작은 별들이 하나둘 깨어나 조용히 빛을 내는 느낌이었다.
책상 위에 흩어진 서류들, 의자의 위치, 창문 너머의 빛 - 모든 것이 나의 상태를 반영한다는 걸 새삼 깨닫는다.
오랜 시간 동안 집은 나의 피로를 흡수하던 공간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나의 호흡을 다시 되살리고 맞춰주며, 숨을 고를 수 있는 곳이 되길 바란다.
물건이 너무 많고, 지금은 너무 뒤죽박죽이라 조금씩 정리하며 '작업실' 을 만들고자 천천히 집 구조를 바꿔보려 한다.
혼란스러웠던 마음이 정돈될수록, 공간도 점점 나를 닮아가겠지.
공간을 나답게 만든다는 건, 결국 나 자신을 다시 세우는 과정이기도 하다.
이제는 내 안의 질서를 되찾고, 그 질서를 내 삶의 공간으로 옮겨가려 한다.
쉬어가는 동안, 나는 나 자신과 다시 마주하며 처음으로 ‘시간을 내 속도로 쓰는 경험’ 을 하고 있다.
이제 남은 건, 회복된 나를 품고, 새로운 챕터를 열어 나의 호흡으로 하루를 천천히 써 내려가는 일뿐이다.